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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146)] 위안의 서

[책을 읽읍시다 (1146)] 위안의 서

박영 저 | 은행나무 | 184쪽 | 11,5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제3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위안의 서』. 2015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아저씨, 안녕』이 당선되며 문단에 데뷔한 박영 씨는 그동안 생업에 종사하며 작품 발표를 일절 하지 않은 채 소설을 썼다. 그동안 아홉 편의 단편과 세 편의 장편을 썼고 그중 이번 당선작이 된 『위안의 서』는 가장 최근에 쓴 작품이다. 녹록잖은 현실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소설에 담아낼 수 있기를 바라며 써내려간 이 작품을 통해 저자는 두려움과 외로움에 붙들린 사람들에게, 또 자신에게 따뜻한 위안의 메시지를 보내고자 한다.

 

『위안의 서』는 죽음 앞에 상실감을 가진 두 남녀가 서로를 통해 삶의 의미를 새로이 발견해가는 이야기로 어둠 속에서 빛을 더듬는 문학의 본질적인 물음을 곡진한 문체로 담아낸 작품이다. 출토된 유물에 숨을 불어넣는 보존과학자 남자와 치솟는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정부에서 비밀리에 파견한 공무원 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아무것도 나아질 게 없는 세상에서 청동빛의 건조한 일상을 버티는 이들의 교감과 연대가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정안은 세상을 유기물과 무기물로 구분하는 보존과학자이다. 부서진 도자기 파편을 봉합하고 시간의 흐름에 의해 퇴색된 초상화의 빛깔을 되찾아주는 일이 그의 직업이다. 멈춰 있던 유물의 시간이 다시 움직이도록 하는 정안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곧 멈출 거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어릴 적 어머니가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자신도 몇 년 안에 비슷한 결말을 맞이할 거라는 초조함을 느끼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발굴 현장에서 국립고궁박물관 보존과학실로 운송된 미라를 보존처리하게 된다. 미라의 몸에서 염습의들과 각종 장신구들을 떼어내어 정밀한 작업을 마친 그는 그 결과물들을 미라 특별전에 내보낸다. 박물관이 주최한 미라 특별전은 그의 이제까지의 건조한 삶을 전혀 새로운 것으로 뒤바꾸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것은 미라 특별전에 찾아온 한 여자 때문이다.

 

여자는 치솟는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정부에서 비밀리에 파견한 공무원이다. 그 자신도 생의 의지가 가득하진 않지만 타인들의 죽음을 막는 일에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 의붓아버지의 암묵적 폭력과 불안정한 삶을 꾸려온 어머니 아래에서 성장한 여자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잿빛 세상만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그럼에도 도태되고 싶지 않다는 강박관념이 그녀를 이곳에 머무르게 하는 유일한 힘이다.

 

정안은 미라의 손을 감쌌던 진열장 너머 악수(幄手)를 간절히 바라보는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이제껏 지켜왔던 원칙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다. 그의 앞에 서 있는 여자는 죽음의 세계에서 건너온 것만 같고 얼굴에는 피로감과 절망감이 드리워져 있다. 정안은 그녀에게 자신이 관람객들에게 브리핑할 미라 특별전 팸플릿을 건넨다. 여자는 X선을 비추듯 자신을 꿰뚫어 보는 그에게 오랫동안 감춰온 비밀을 들킨 듯 서둘러 눈길을 피한다. 그렇게 짧은 만남이 끝나고 여자는 전시회장에서 사라진다.

 

얼마 뒤 미라 특별전 브리핑을 보러 나타난 여자는 저고리에 수놓아진 새가 애벌레를 쪼아 먹는 문양을 설명하며 죽음을 미화하는 정안에게 항의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날마다 죽음의 현장을 마주해야 하는 그녀가 보기에 죽음은 전혀 아름답지 않으며 냉정하고 잔인한 파국일 뿐이다.

 

『위안의 서』를 쓰면서 박영 작가는 두려움과 외로움에 붙들린 사람들에게, 또 자신에게 따뜻한 위안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다. 죽음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공통된 전제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녹록잖은 현실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소설에 담아낼 수 있기를 바랐다. 이를 위해 익산 폐사지 발굴 현장에 가서 직접 유물 발굴 작업에 참여했고 자살률을 낮추려 분투하는 공무원을 만나 비밀스런 인터뷰를 했고 고궁박물관 보존처리 전문가의 자문을 받는 등 취재에도 공을 들였다. 소설의 초고를 쓰고 다듬고 완성하는 데는 삼 개월 남짓 걸렸다.

 

어찌 보면 소설의 주인공 정안과 오상아는 다른 듯 같은 인물이다. 하나의 영혼을 나눠 가진 듯 둘 다 삶에 대해 비슷한 이미지와 에너지를 품고 있다. 한순간에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어떤 그림자에 사로잡혀 있는지 눈치채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다.

 

작가는 이들을 통해 상처와 불안의 힘을 역설한다. 달이 뜬 밤 발굴 현장의 구덩이에서 모나고 훼손된 존재들이 둥글게 말린 채 나누는 위안의 몸짓을 보라. 소멸하는 자들의 슬픔이자 운명인 ‘허무맹랑한 죽음’에 맞서려는 애달픈 노력, 그것과 다름없다. 이렇듯 누구든 함께 죽음에 맞서주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상황이 나아지지 않더라도 우리의 삶이 아주 덧없지는 않으리라.

 

 

작가 박영 소개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려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2015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아저씨, 안녕」이 당선되어 데뷔했다. 2017년 장편소설 『위안의 서』로 제3회 황산벌청년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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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