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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176)] 바이폴라 할머니

[책을 읽읍시다 (1176)] 바이폴라 할머니 

전경자 저 | 알렙 | 272쪽 | 13,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2009년 시집 『아무리 아니라 하여도 혹시나 그리움 아닌가』를 낸 데 이어 전경자 작가는 2017년 일흔셋의 나이로 첫 소설을 써 냈다. 소설 『바이폴라 할머니』에는 세 명의 노인이 등장한다. 정확하게는 70대 노인과 한 명의 40대 후반 중년이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가 30대의 격정과 욕망을 다루었다면 『바이폴라 할머니』에서는 ‘생의 끝자락’에 들어선 70대들의 격정과 열망이 유쾌한 반란처럼 펼쳐진다. 가난 때문에 30살이나 많은 남편에게 ‘잠자리 없는 조건’으로 팔리듯 결혼하게 된 ‘병메’, 청소년기의 한번 실수에 대한 책임으로 그 이후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눈깔사탕’, 많은 동거와 편력이 있었지만 평생 독신이었던 ‘바이폴라 할머니’가 그들이다. 

 

‘바이폴라’란 극단의 성격을 가진 인격을 말한다. 즉 조울증인데 일반적으로는 노년에게는 바이폴라가 발견되지 않는다 한다. 즉 우울증이면 우울증이지 왔다갔다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작가는 노년의 등장인물을 통해 바이폴라를 그려내고자 했다. 분명 작가 자신의 자전적 내용이 투영되었을 것 같은 이 바이폴라 할머니를 통해, 노년에 이르러서도 격정과 열망이 지속됨을 보여주고자 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원작을 다룬 영화에서는 단 한 번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 숙명이 다루어진다. 이 소설에서도 인생에서 단 한 번의 실수(선택)로 인해 숙명처럼 ‘사랑’을 하지 못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그 숙명을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 혹은 격정을 나타내는 노인을 위한 사랑은 무엇일까, 어떤 색채일까?


양극을 왔다갔다하는 일흔셋의 할머니가 어느 날 팔이 부러져 병원에 입원한다. 같은 병실에서 40대 후반의 입원 환자를 만난다. 할머니는 그녀를 병메(병실 메이트)라 부른다. 할머니와 그녀의 오랜 지인인 ‘눈깔사탕’(고향 선배)에게 병메는 자신의 가족에 대해 둘러댄다는 것이 그만 거짓말을 하게 된다.


작은 거짓말을 풀어나가기 위해 병메는 자신의 감춰진 과거를 이야기한다. 병메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생활이 없는 결혼을 선택했던 것. 물론 오로지 상대방의 돈을 보고 결정한 결혼을 병메는 부끄러워하지도 후회하지도 않는다.


‘눈깔사탕’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단 한번 친구 누나와 떳떳지 못한 일을 저지른 후, 50여 년이 지나도록 그 일을 잊지 못한다. 할머니로 말하면 수차례의 동거와 그보다 많은 남성 편력이 있었지만 정작 잘생긴 고향 오빠인 ‘눈깔사탕’과는 키스 한번 나눠보진 못했다.


병메의 남편은 첫 사랑과의 결혼이 파탄 난 후 의붓딸을 데리고 한국에 돌아왔다. 평생을 한 여자만을 사랑한 병메 남편은 가난에서 몸부림치고 있던 병메의 아버지에게 ‘잠자리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결혼을 제안하고 병메 역시 성생활이 없는 결혼이 가난보다 더 힘들지 않다며 이를 받아들인다. 삼십 년 차이나는 남편과는 몇 해 전에 사별하고, 자신의 딸이지도 죽은 남편의 딸이지도 않은 의붓딸과 친자매처럼 지낸다.


퇴원 후 같은 아파트 단지로 이사온 병메와 할머니 눈깔사탕은 자주 만나 지내며,짜장면과 고전 영화와 음악으로 서로 교류한다. 병메와 눈깔사탕에게 미묘한 감정이 싹트는 것을 지켜보는 할머니. 그것은 사랑일까 격정일까. 할머니에게는 젊은 시절의 많은 편력과 관계를 뒤로하고 현재엔 고향 오빠 ‘눈깔사탕’만이 유일한 지인이다. 반려견 하나와 살고 있는 일흔셋의 독거노인이다. 그에 반해 병메는 아직 노년이라 할 수 없는 마흔 후반. 점잖은 이웃집 할아버지에 대한 호의로 병메가 눈깔사탕을 바라보는 것을 눈깔사탕이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할머니에게 바이폴라(조울증)가 있을 수 없다지만 할머니는 자신이 바이폴라이지 않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생의 끝자락에 다다라서도 노인의 급류와 같은 격정이 생의 한가운데에 있는 30대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수 있을까. 작가는 바이폴라를 있는 그대로, 각각 있는 대로, 보이는 대로 보여준다. “미친 사람은 자유에서 벗어나 자유롭지만, 미치지 않은 사람은 자유에 갇혀서 자유롭지 못하다.”처럼 마치 비정상이 정상인 것 같고, 정상이 비정상인 것은 통찰을 언뜻 보여준다. 하지만 이는 바이폴라를 그대로 드러내려는 의도이지 전복적 사고는 아니다.


바이폴라 할머니는 무척 지적이고 자유분방하고 어찌 보면 발칙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러면서도 생의 끝자락에 다다르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노년의 그에게는 병메와 같은 잘 꾸며진 삶이 아니라 눈깔사탕 같은 의지가지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병메에 대해서 눈깔사탕은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지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할머니에게 말해 준다. 노년의 삶에서 변화가 오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눈깔사탕은 짝사랑하며 앓는 것도 아니요,얻기 위해 애걸복걸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삶에 다가온 미묘한 감정을 심리적 갈등을 덤덤히 받아들인다.


바이폴라 할머니 그리고 눈깔사탕은 “까맣게 먼 곳에 찍혀 있는 까만 점을 향하여 침착하게 홀로 걸어”가는 중이다. 일흔이 넘어도 심리적 갈등에 흔들리고 상처 입는 삶은 삼십 대의 것과 다르지 않다. 다만 그 격정의 무게를 다르게 받아들일 뿐.


몇 해 전 작가는 신경정신과 의사와의 상담에서 연로하신 분은 우울증이면 우울증이지 바이폴라(조울증)일 리가 없다고 전해 들었다. 그런데 중학교 시절부터 오늘까지 극과 극을 오락가락하면서 살아왔다고 한다. 작가의 의식이 반영되었을 ‘바이폴라 할머니’ 역시 노년에 이른 시점까지도 바이폴라라는 자각이 있다. 학계에서도 일반적으로 보지 않는 노년의 조울증은 결국 “까맣게 먼 곳에 찍혀 있는 까만 점”이 보일 때까지도 지속된다. 소설 속에서 할머니는 죽음 동네에 들어서기 전까지도 감정의 평온 상태를 가질 수 없다. 침착하게 홀로 가지만 문득 외롭고 마음이 급해진다. 숨을 멈추고 달려가기도 한다. 마침내 죽음 동네에 들어서는 순간에야 감정의 널뛰기가 멈추어질까? 작가는 다만 소설에서 양극단을 오가며 각각 있는 대로 보이는 대로 드러내고자 했다.



작가 전경자 소개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화여자고등학교, 성심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 오스틴 주립대학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명예 교수로 있다.


1995년, 1989년 한국문예진흥원 한국문학상 번역 부문에서 각기 대상과 장려상을 수상하였으며, 이 밖에도 [코리아타임스 한국문학번역상]을 세 차례 수상한 바 있다.


저서로 시집 『아무리 아니라 하여도 혹시나 그리움 아닌가』가 있고, 옮긴 책으로 『유토피아』(토마스 모어의 Utopia) 외 다수가 있으며 영역으로 Peace Under Heaven(채만식의 『태평천하』)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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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