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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203)] 들소에게 노래를 불러준 소녀

[책을 읽읍시다 (1203)] 들소에게 노래를 불러준 소녀

켄트 너번 저 | 서정아 역 | 글항아리 | 500쪽 | 19,8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미네소타 주 레드레이크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오지브와족, 라코타족 등 여러 원주민과 어울려 지내던 저자 켄트 너번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교류하며 보고 듣고 경험한 일들을 몇 권의 책으로 펴냈다. 당연하게도 그는 인디언과 대화를 나누는 법,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법, ‘백인처럼 굴지 않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또 그들이 꿈의 대화에 응답할 줄 안다는 사실도. 어느 봄부턴가 의미를 알 수 없는 꿈이 너번에게 찾아든다. 꿈은 어딘지 비범했고 현실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생생했다. 그리고 늘 같은 내용으로 반복되었다. 꿈에서 오지브와족 원로 메리는 너번을 찾아와 웃음 지으며 ‘노랑새’를 가리킨다. 노랑새는 너번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하며 사라진다.

 

노랑새는 너번이 오랫동안 알고 지낸 라코타족 원로 댄의 여동생이다. 댄에게서 오래전 사라진 여동생을 수소문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던 데다, 메리에게 마음속으로 빚을 지기도 했던 너번은 반복되는 꿈의 끝에, 꿈속에 나타난 메리를 찾아가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녀의 손녀 도나에게서 뜻밖의 부고를 전해듣는다. 메리가 그에게 남긴 긴 편지가 담긴 노트와 함께. 편지는 노랑새에 관한 것이었다. 노랑새와 같은 인디언 기숙학교에서 지냈던 메리는, 소녀가 그곳에서 겪은 일들, 생전에는 차마 너번에게 털어놓을 수 없었던 일들에 관해 조심스럽게, 그러나 진심을 담아 차근차근 적어 내려갔다.

 

메리의 가슴 아픈 노트, 두 사람의 믿기 어려운 증언을 ‘노랑새’의 오빠인 댄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까. 고민을 거듭하던 너번은 댄과 가깝게 지내던 원주민 위노나와 그로버를 먼저 찾아간 뒤, 댄에게 소식을 전하기로 한다. 그 길에는 또 한 명의 인디언 점보, 그리고 길에서 만난 유기견 페스터스도 함께한다. 그리고 너번의 곁에는 언젠가부터 비범한 기운을 풍기는 들소 한 마리가 서성인다.

 

마침내 댄에게 꿈과 노랑새에 대해 들려주던 너번과 그 이야기를 전해 듣던 댄은, 이제까지의 모든 일을 하나로 꿰어낼 실마리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실마리는 ‘지’라고 불린 작은 소녀에게 쥐어져 있다. 오래전 사라진 노랑새와 생김새부터 행동거지까지 놀랍도록 닮아 있는 소녀는, 노랑새가 그랬듯 병원으로 보내질 위기에 처해 있다. 어느 날, 숲 속으로 사라진 소녀. 그리고 그녀를 찾아나서는 너번과 원주민 친구들. 이들은 소녀를 무사히 되찾을 수 있을까? 소녀는 동물과 대화하고, 돌의 소리를 듣는 능력을 지닌 채,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책의 제목인 『들소에게 노래를 불러준 소녀』는 그 내용을 모르고 읽을 때 언뜻 신비롭고 낭만적인, 그러나 조금도 그 이상은 못 되는 흔한 인디언 세계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인디언 잠언집이나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익히 보아왔던, 이야깃거리 혹은 신기한 구경거리일 따름이리라고 쉽게 생각해버릴 수 있겠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책은 문자 그대로 ‘들소에게’ ‘노래를 불러준 소녀’에 관한 이야기다. 그것은 환상도, 미화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기록이어서 오히려 더 두려운 ‘진실’로 다가온다.

 

원주민의 삶에 관한 우리의 이해에서 매우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사회적 통설, 오해, 고정관념을 걷어내면 여느 세계의 것과는 다르고 꿋꿋한 심장박동을 지닌 하나의 세계가 모습을 드러낸다. 서구적 관념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우리는 꿈으로 대화가 가능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꿈은 그저 꿈일 뿐이다. 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도 여기지 않는다. 돌은 살아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깊고 어두운 산속에서 만난 커다란 짐승은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다. 우리는 짐승과 대화할 수 없다. 현대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이 사실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의 믿음 안에서는. 하지만 그 믿음이 고작 세계의 일부밖에 아니라면 어떨까?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차원의 현상은 결코 우리의 믿음 안에만 머무는 법이 없다.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얻을 수 있는 지혜, 그리고 그 지혜가 백 세대에 걸쳐 축적되어 자리 잡은 섭리……. 어떤 세계에서는 이런 것들이 온도계의 눈금이나 일기예보보다 더 절대적인 의미를 띠기도 하는 것이다.

 

한편 우리는 이해하지 못한 것들을 손쉽게 전유하기도 한다. 케임브리지 영어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문화 전유cultural appropriation란 “자신이 속하지 않은 문화에서 무언가를 가져오거나 사용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여기에는 한마디 부연이 덧붙여져 있다. “특히 그 문화에 대한 이해나 존중을 보이지 않은 채.” 소수 문화, 약소 문화에 대한 전유가 더 빈번하게 발생하는 영미문화권에서 타문화의 전유는 대개 어떤 식으로든 ‘해롭거나 폭력적’이라는 비난에 직면한다. 이 책은 우리가 낯선 문화를 접하는 방식, 특히 그 편협함과 안이함을 ‘그 문화의 주인’들의 입을 통해 들려준다. 그들의 입을 통해 듣는 우리 자신의 모습은 그야말로 부끄럽기 이를 데 없다.

 

공예점 주인 등 몇몇을 제외하면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앎’이라는 개념 앞에 겸손하다. 그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섣불리 앎의 세계로 편입시키려 들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인디언 소녀를 정신병원에 가두고, 약과 주사로 치료하려 들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멋대로 방치하고 혹사시키는 대신, 우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자 한다. 우리가 앎에 관하여 비로소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건 어쩌면 그 지점일지도 모른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얼마간 감수하고, 그 존재를 인정하며 원주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두 겹의 세계는 새로운 차원의 보편성을 띠고, 우리 앞에 펼쳐진다.

 

인디언의 입을 통해 툭툭 던져진 이 책의 많은 말은 대개 오랜 시간 벼려진 것들이다. 그것들은은 중심 사건을 단단하게 에워싸며, 이 책의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을 중요하게 만든다. 그들의 말은 부분보다는 전체, 찰나보다는 영겁에 가까운 새로운 시공간의 차원으로, 그래서 어쩌면 진리라고 할 수 있을 법한 무엇으로 다가온다. 댄의 입을 빌리면, 인디언은 ‘뭔가의 작동 원리를 본답시고 그것을 따로 해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각난 세상을 한데 모아 하나의 온전한 세상으로 조립하려고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통찰은 그래서 더 묵직하게 느껴진다. 이 책의 또 다른 면면은, 이런 오래된 지혜들로 채워져 있다

 

 

작가 켄트 너번 소개

 

작가이자 교육자이며 조각가이기도 한 켄트 너번은 아메리카 인디언에 관한 문제들과 교육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종교학과 예술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브르티시 컬럼비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베네딕트 사원, 일본 히로시마의 평화의 박물관에 설치된 작품을 만든 뛰어난 조각가이기도 하다. 몇 년간 미네소타의 오지브에 부족과 함께 부족 연장자들의 회고담을 수집하는 일을 주관했고, 그 결과물로 원주민 노인들의 기억을 모은 『붉은길을 따라서』와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라는 두 권의 책을 냈다.

 

소설가이기도 한 그는 북아메리카 인디언 문화와 백인 문화의 접점을 찾는 글을 꾸준히 써오고 있다. 이런 생각들은 『잊히지 않는 위엄』과 『상처난 무릎 운디드니』에 잘 나타나 있다. 또한 오클라호마 주 노먼에 있는 '아메리카인디언 연구소'의 자문위원으로 교과과정을 개발하는 데도 참여하고 있으며 '전국인디언교육협회'와 '인디언 교육에 관한 푸른 리본 위원회' 등 다양한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 밖의 저서로는 『일상의 작은 은총』『작은 유산』『아들에게 주는 편지』『나를 당신의 평화의 도구로 삼으소서』등이 있으며 『인디언의 영혼』『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등을 책임 편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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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