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1757)] 조용한 아내
A.S.A. 해리슨 저 | 박현주 역 | 엘릭시르 | 432쪽 | 14,5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조디는 남편 토드가 습관적으로 바람을 피우는 것을 알고, 왜 그러는지 이유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일단 두 사람이 부부라는 형태로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대놓고 비난하지는 않았다. 조디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의 평온한 삶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드가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러 조디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안정’이 위협받게 되었다. 이제껏 조용히 살아온 조디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변해야 함을 깨닫는다.
『조용한 아내』는 조디와 토드의 입장을 번갈아 보여주는 식으로 전개된다. 이런 전개 방식을 통해 두 사람의 생각 차이를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토드는 불륜 상대와 여행을 가기 위해 조디에게 ‘친구들과 낚시 여행을 간다’고 말한다. 토드는 이 거짓말에 크게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고 불화를 피하는 합리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가정이 주는 안정감과 불륜이 주는 짜릿함이 모두 필요한 남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디는 그의 거짓말을 눈치챘을뿐더러, 토드의 사고방식까지도 파악하고 있다. 토드는 스스로를 무척 합리적인 판단력을 지닌 너그러운 남성이라고 여기지만, 심리상담사 조디가 보기에는 책임을 회피하고 문제를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오이디푸스콤플렉스를 가진 탓에 아직도 어머니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채 모든 여성에게 성적 욕망을 투사하고 있다. 토드의 과장된 자기 인식과 조디의 냉철한 분석에서 오는 시각 차이는 『조용한 아내』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조용한 아내』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가정과 부부 관계를 소재로 한 가정 스릴러다. 2010년대로 접어들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이 장르는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강선재 옮김, 푸른숲 펴냄)를 선두로 ‘살인자 아내’를 선보인다. 그들은 기혼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기대를 배반하며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인물들이다.
『나를 찾아줘』의 에이미가 파격적인 모습으로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면 『조용한 아내』의 조디는 우리 주변에서 있을 법한 모습으로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감정의 줄다리기를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현실 세계의 부부와 다름이 없다. 조디가 가정의 평안을 위해 침묵하기로 선택한 것이나, 조디의 노력을 배반하고 애인에게 떠난 토드에게 느끼는 분노는 누구라도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덕분에 담담하고 절제된 문장으로 적힌 작품임에도 마치 친구의 친구 이야기를 듣는 듯 몰입할 수 있다.
작가 A.S.A. 해리슨 소개
A.S.A. 해리슨은 캐나다 작가이자 예술가인 수전 앤절라 앤 해리슨의 필명이다. 수전 해리슨은 1948년 토론토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 후반에 온타리오 예술 대학에 잠시 적을 두고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발화에 관심을 가진 후로는 저널리즘, 예술 비평을 쓰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A.S.A. 해리슨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이후 『오르가슴』 『폭로』 등의 논픽션을 발표하며, 잡지 편집자, 그래픽 디자이너, 카피 편집자, 예술 출판물 편집자로 활동했다. 그녀는 편집자로서 말에는 진실을 전달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믿고 작가들의 언어를 명확히 하는 데 힘썼다.
심리학과 철학을 공부하던 1995년 무렵 소설로 관심을 돌린 그녀는 범죄소설 습작을 쓰기 시작했다. 초기의 작품들은 그녀가 관심을 갖고 활동했던 주제인 ‘동물 권리’에 관한 탐정소설이었다. 이 시도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고, 다음으로 쓰기 시작한 작품이 『조용한 아내』다.
수전 해리슨은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이 자기 감정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 주변 환경에 대한 서술을 통해 인물의 감정적 변화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꾸준히 단련된 글솜씨는 심리 스릴러라는 색다른 장르에서도 힘을 잃지 않고 그녀의 심도 깊은 고찰을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수전 해리슨의 첫 소설인 『조용한 아내』는 발표된 2013년에 아마존과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 상위권에 오르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책이 발표되기 직전인 2013년 4월 10일 수전 해리슨은 암으로 사망하여, 안타깝게도 첫 소설의 성공을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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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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