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1758)] 제법 안온한 날들
당신에게 건네는 60편의 사랑 이야기
남궁인 저 | 문학동네 | 328쪽 | 15,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응급실의 의사 남궁인이 조금 색다른 에세이로 독자를 찾아왔다. 이번 책에서 그는 좀더 일상에 가까운 시선으로 삶을 말한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매번 인간의 운명을 지켜봐야 했던 그에게, 모든 것은 결국 사랑이었다. 우리가 살아 있는 순간,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순간, 그럼에도 기억함으로 완성되는 순간. 인간의 고통과 그럼에도 끝내 찾아오는 기적 같은 회복을 매 순간 지켜보는 그가 들려주는 사랑 이야기에는 우리가 결국 지금, 여기,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 있음을 생생히 확인시켜주는 특별함이 담겨 있다.
의사가 왜 하필 사랑 이야기를 들고 왔을까 하는 생각은 다음 질문을 마주했을 때 사라지고 만다. “우리가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에 가장 후회할 일은 뭘까?” 갖지 못한 돈? 누리지 못한 권력? 명예와 인기? 아니, 그렇게 대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끝내 못다 한 사랑, 소중한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 망설이고 미루다 놓쳐버린 마음. 그런 것들이 후회로 남지 않을까. 그러니 늘 생사의 벼랑 끝에 선 마음으로 일하는 그가 사랑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끝까지 남는 것은 결국 사랑일 뿐이므로.
그가 일터에서 목격한 사랑은 때로 강철 같은 의사들의 눈시울마저 젖게 할 만큼 감동적이다. 평생을 해로한 할아버지가 갑작스레 아내를 떠나보낸 후 마지막으로 아내의 손을 꼭 잡고 하는 고백, 가족보다 더 끈끈하게 지내던 환경미화원이 동료의 죽음 앞에서 오열하는 대목, 화재 현장에서 아이를 지키기 위해 맨몸으로 버틴 아버지의 이야기 등은 일상에 파묻혀 살아가는 동안 잊고 있던 사랑의 소중함을 보여준다.
이번 책은 전작 『만약은 없다』 『지독한 하루』와 결을 조금 달리한다. 이전 산문집에서 응급실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근거리의 생생한 모습을 주로 전했다면, 이번 책에서 그는 종종 안온한 일상으로 물러나 고통 이후 찾아오는 인간의 회복을 멀리서 응시하기도 한다. 가장이 쓰러져 휠체어에 앉게 됐지만 남은 가족은 그를 돌보며 슬픔을 딛고 건강하게 회복하고 성장해가는 이야기(「희망」)는 타인이 함부로 재단하지 못할 인간의 불행과 행복, 생명력에 관한 일화다.
「가난」 「세균」 「열사병」 같은 글에서는 의사의 시선으로 예민하게 간파한 세상의 부조리를 말하는 그의 음성이 느껴진다. 아무리 현대 의학이 발달했다지만 인간의 마음까지 과학적으로, 합리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불안과 공포가 사람들을 잠식하면 때때로 비이성적인 분노와 손가락질이 속수무책 엉뚱한 방향을 가리키기도 한다. 「세균」은 장티푸스 무증상 보균자로, 반평생을 섬에 고립돼 살아야 했던 ‘장티푸스 메리’의 비극을 일깨운다. 그는 “현대 의학이 완벽해 보이지만, 실은 1900년대에도 의학은 ‘현대 의학’이었다.
지금의 우리도 완벽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여전히 비합리적 공포감과 손가락질과 편견의 프레임이 남아 있고 누군가를 지탄하는 일이 더욱 손쉬워진 세계에서, 악의 없이 불행했던 장티푸스 메리의 비극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난」은 돈이 없어 어떤 치료도 받지 않고 죽겠다던 어느 버스 운전기사의 이야기를, 「열사병」은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이 유난히 열사병 환자로 많이 실려 왔던 2018년 여름의 기억을 담고 있다.
작가 남궁인 소개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병원에서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취득, 현재 이대목동병원 임상조교수로 재직중이다. 읽기와 쓰기를 좋아해 그 틈바구니 속에서도 무엇인가 계속 적어댔으며, 글로 전해지는 감정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믿는다. 『만약은 없다』 『지독한 하루』를 썼다.
누군가의 안온한 하루는 곧 누군가의 지독한 하루이기도 하다. 매일 밤 응급실은 예기치 못한 불행을 겪은 사람들로 붐빈다. 응급의학과 의사는 그 불행을 하나도 피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 현장에서 숱한 하루를 버텨낸 의사의 목소리를 이 책에 담았다. 여기 담긴 기록은 매일의 비극을 똑똑히 목격하고 마치 참회하듯 써내려간 글들이다. 결국 예고 없이 닥치는 운명의 가혹함을 인간의 힘으로 이겨내지 못했을지라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지독한 하루 앞에 지독하게 저항하는 인간의 간절함이 여기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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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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