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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903)] 그 남자네 집

[책을 읽읍시다 (1903)] 그 남자네 집

박완서 저 | 현대문학 | 388| 13,000

 

 

[시사타임즈 = 박수연 기자] 1950년대 전후 서울의 피폐한 풍경이 눈에 보일 듯 그려지는 그 남자네 집은 노년에 접어든 주인공이 첫사랑 그 남자가 살았던 돈암동 안감천변을 찾아가 옛 기억을 떠올리면서 시작된다. 

 

먼 친척뻘인 그 남자네 가족이 내가 사는 동네로 이사를 오면서 고등학생이던 나와 그 남자는 처음 만난다. 그리고 몇 년 후, 전쟁 통에 미군부대에서 일하던 나는 퇴근길 전차 안에서 그 남자와 우연히 다시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인연을 맺는다.

 

전쟁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황폐하고 남루해진 그 겨울, 나와 그 남자는 폐허가 된 서울 거리 구석구석을 누비며 구슬처럼 빛나는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생존만이 가치 있던 시절에 음악과 문학을 즐기는 낭만적인 그 남자의 존재는 나에게 잠시 현실에서 눈을 돌릴 수 있는 탈출구가 되어준다.

 

그러나 그는 한 푼도 못 버는 백수에다 세상 물정 모르고 노쇠한 어머니를 괴롭히는 철부지 막내아들이었고 나는 다섯 식구의 밥줄이었기에, 나는 작지만 번듯한 집과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은행원과 결혼하기로 결심하고 그 남자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첫사랑의 단꿈에서 깨어나 시집살이를 시작한 나는 남편이 가져다주는 그리 많지 않은 월급으로 근근이 살림을 꾸리고, 집안의 온갖 대소사를 박수무당에게 의존하는 시어머니와 갈등을 겪으면서 결혼이라는 현실에 조금씩 무뎌져간다. 신혼의 재미도 모르는 채 일상은 급격히 권태로워졌고, 그즈음 시장통에서 그 남자의 누나를 우연히 만나 그의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그 남자와 재회하며 또 한 번 현실로부터의 일탈을 꿈꾼다. 남편과 시어머니의 눈을 피해 은밀한 만남을 이어가던 어느 날, 그는 하룻밤의 밀월여행을 제안한다.

 

이 소설은 박완서만의 세밀한 묘사와 기지 넘치는 문장으로 이루어진 한 편의 애틋한 연애소설이자, 한 여성의 삶, 나아가 한 시대의 모습을 속속들이 엿볼 수 있는 완벽한 기록물이기도 하다.

 

전쟁 통에도 광주리장사를 하고 하숙을 쳐서 자식을 먹여 살린 어머니들, 가족을 위해 손가락질도 무릅쓰고 양공주 노릇을 했던 젊은 여성들,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된 남자들. 중심인물인 나와 그 남자뿐 아니라 주변인들도 제각각 개성이 두드러져 이야기를 탄탄하고 풍성하게 받쳐준다.

 

전후의 피폐한 일상과 그 생활전선을 직접 몸으로 겪어야 했던 이들의 실상이 첫사랑이라는 더없이 순수한 감정과 대비를 이루며 가슴 찡한 울림을 선사한다.

 

온몸에 겨울과 같은 독한 상처를 품었으되 당당한 나목처럼 봄의 언어로 따뜻하게 우리 곁에 서 있던”(구효서) 박완서 작가.

 

그가 남긴 마지막 장편이자, 그의 삶 자체이기도 한 이 소설이 어느 때보다도 힘들고 지난했던 한 해를 보내고 2021년을 맞이한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변함없이 따뜻한 온기와 위로를 안겨줄 것이다.

 

 

작가 박완서 소개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났다.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마흔 살이던 1970여성동아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일제강점기에서 전쟁, 고도성장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기를 온몸으로 겪으며, 삶의 크고 작은 질곡들과 이를 견디게 해준 문학에의 열정을 바탕으로 따뜻하고 생동감 넘치는 글을 써냈다.

 

40여 년간 장편소설 휘청거리는 오후』 『도시의 흉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아주 오래된 농담과 소설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엄마의 말뚝』 『너무도 쓸쓸한 당신,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살아 있는 날의 소망』 『세상에 예쁜 것을 비롯해 동화와 인터뷰집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품을 발표했다.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이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암 투병 끝에 2011122일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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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