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97)] 우리는 정말 헤어졌을까

[책을 읽읍시다 (197)] 우리는 정말 헤어졌을까

대니얼 핸들러 저 | 마이라 칼만 그림 | 달 | 3840쪽 | 15,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여기에는 흑백영화를 좋아하는 평범한 소녀 ‘민 그린’과 학교의 농구스타 ‘에드 슬래터턴’이 등장한다. 둘은 친구 ‘알’의 생일파티에서 만나 보통의 친구들처럼 사랑에 빠졌지만 이내 곧 헤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민’이 ‘에드’의 집 앞에 두 사람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넣은 커다란 상자를 하나 버리고 가는 장면으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첫번째로 상자에서 나온 물건은 ‘맥주 병뚜껑’이다. ‘알’의 생일파티에서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민’은 ‘에드’가 손에 쥐여준 그 병뚜껑 두 개를 소중하게 간직했다. 두번째는 ‘<그레타 인 더 와일드> 영화 티켓’이다. 둘의 첫 데이트는 바로 이 영화를 함께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두 사람은 영화관에서 영화 속 여주인공 로티 카슨을 닮은 할머니를 발견하고는 그녀 뒤를 따라가고, 소설은 내내 그 발자취의 흐름을 함께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실재하는 것들이 아닌, 모두 저자 대니얼 핸들러의 머릿속에서 새롭게 창작된 가상의 것들. 그렇게 해서 두 소년소녀의 사랑이야기를 이어가는 소설의 큰 줄기 속에 다양한 작품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매 페이지마다 새롭게 스며들어 있어, 소소한 재미를 준다.

 

‘민’은 ‘에드’와의 모든 순간을 그렇게 끊임없이 적어내려가며 관계 속으로 점점 빠져든다. 그저 평범하고 지극히 똑같은 하루하루 속의 따분한 일상들의 단면들이 민의 마음을 통과해 특별하고 의미 있는 것들로 재탄생된다.

 

누구에게나 여물지 못했던 시절은 있기 마련이다. 물론 꺼내놓기 불편하고 창피하다. 하지만 그런 모습들이 모이고 쌓여 지금의 조금 더 성숙하고 의연한 어른으로 성장했다. 우리는 모두 그런 과정을 겪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을 손에 들고 있는 동안만큼은 우리는 모두 자연스레 누군가의 ‘민’ 혹은 ‘에드’가 된다. 그렇게 아프고 어설펐던 ‘첫사랑’은 웃음이 피식 새어나오게도 하고 어딘가 멋쩍어 괜히 머리를 긁적이게도 하지만, 이내 아련하게 우리의 마음속을 후벼판다.

 

모든 사물에는 추억이 깃든다. 민이 에드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버린다고 해서, 그들의 추억 자체가 없었던 일이 될까. 에드가 핼러윈 포스터 한 귀퉁이를 찢어 전화번호를 적어준 종잇조각, 식당에 들어갔다 들고 나온 성냥갑, 잠시 시간을 보내러 들어간 선물 가게에서 샀던 핀홀 카메라, 에드의 누나가 부엌에서 꺼내준 해어밴드, 공원에서 옷에 묻혀 들어온 식물의 씨앗……. 이렇게 사소하다 못해 하찮은 물건까지도 모두 간직하고 있던 민은,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사소한, 이제는 버려지는 물건을 통해 사랑을 말한다.

 

상자에서 나오는 물건들은 그들의 결코 길지 않았던 한 달여간의 연애사를 차례로 통과한다. 이 둘은 평범하게 사랑했고, 또한 다투었으며, 그렇고 그런 이유들로 헤어진다. 이토록 지극히 보통인 연애담이 한 권의 의미 있는 소설이 된 데에는 대니얼 핸들러 특유의 섬세하고 유리알 같이 투명한 심리묘사가 크게 작용했다. 이미 청소년 환상문학 <위험한 대결> 시리즈로 전 세계 40여 개국의 청소년으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얻었던 그의 필력은 이번 연애소설을 통해 좀더 현실적이고 농밀한 이야기들로 구현된다.

 

 

작가 대니얼 핸들러 소개

 

소설가. 어른들을 위한 책 『베이식 에이트』 『말조심해』 『부사들』 등을 썼고, 레모니 스니켓이란 필명으로 청소년을 위한 책 『위험한 대결』 시리즈와 『열세 단어』를 썼다. 고등학생 때만 최소 세 번 이상 여자에게 차인 경험이 있다.

 

 

그림 마이라 칼만 소개

 

어른들을 위한 책 『그리고 행복을 찾아서』 『불확정성의 원리』와 어린이책 『열세 단어』 『소방선』을 쓰고 그렸다. 한때 밥 딜런처럼 생긴 소년과 사귀었고 그다음에는 레너드 코언을 닮은 사람과 연애하고 이별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종합지 -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