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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263)] 19세



19세

저자
이순원 지음
출판사
| 2013-05-2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한 소년의 이야기!한국 서정문학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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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읍시다 (263)] 19세

이순원 저 | 곰(웅진문학임프린트) | 280쪽 | 13,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한국 서정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이순원. 『19세』는 오랜 시간 독자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그의 대표작으로 이 책은 초판 원고에 에피소드를 추가하고 각주를 가다듬어 펴낸 완결판이다. 그 결과 이야기는 19세 찬란한 청춘의 입김처럼 더욱 농밀해지면서 고전이자 국민 성장소설로서의 품격을 갖추게 됐다.

 

 

19세, 지나지 않는 평생을 맴도는 우리들의 시간

 

청소년을 대상으로 자극적이거나 판타지 일색의 외국 소설들이 문학시장을 점유한 이 시대에 『19세』가 지니고 있는 의미는 특별하다. 출간된 지 십 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19세』가 세대를 아우르며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이야기의 힘에 있다.

 

소설은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화자가 청소년 시절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일탈행위를 갖가지 에피소드와 함께 다소 저속한 욕까지 섞어 가면서 익살스러운 문체로 풀어놓는다. 시종일관 과거의 아련한 추억에 빠져들게 하면서도 ‘맞아 그랬지’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이 소설에서 주목할 점 중 또 한 가지는 각주이다. 각주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간 각주의 일반적인 역할이 이야기의 흐름에 있어서 필요하지만 독자들에게는 다소 낯설거나 어려운 용어를 쉽게 설명하는 데에 그쳤다면 『19세』에서의 각주는 또 다른 서사를 끌고 가는 독특한 역할을 하고 있다. 소설의 부가적인 설명이 아닌 독립적인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덕분에 기존의 소설에서 부수적인 요소로 여겨졌던 각주가 이 소설에서는 또 다른 읽는 즐거움이 됐다.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 기억 저편에서 만난 유년 시절의 그리움

 

성인이 되고 나면 성인이 되기 전에 갈망하던 것들은 까맣게 잊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 시절의 꿈, 나를 설레게 했던 사람, 하고 싶었던 일과 죽도록 하기 싫었던 것들. 그 당시에는 그토록 절실했던 마음이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지고 잊힌 채로 자신도 모르게 어른이 돼버린다.

 

그러다 어느 날엔가 소년일 적의 자신과 조우할 순간이 올 때 잊고 있었던 수많은 기억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지만 어른이 된 소년은 다시는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음을 알고 있다. 그저 그 시절을 되새기고, 추억하고 그리워할 뿐이다.

 

『19세』 정수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시절 우리가 진정으로 무엇에 굶주려 있었는지. 사소하다고 여겼던 과거의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웠는지를 각성하게 될 것이다.

 

정수는 어른이 되기 위해 꼭 갖춰야 하는 것은 경제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경제권을 갖기 위해서는 ‘농부가 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여긴다. 강릉을 벗어나본 적이 없는 정수에게 눈앞을 막고 있는 대관령 너머는 동경해 마지않는 어른의 세계이다. `잘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고랭지 농사가 정수에게는 빨리 어른이 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으로 다가온 것이다.

 

서울대에 간 모범생 형과 달리 정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이유로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상고로 진학했다. 또 교복과 책을 태우고 가출하는 등의 일탈행위를 거듭 반복하다가 결국 고랭지 농지를 얻게 되는데 운 좋게도 그곳에서 성공을 거두고 큰돈을 벌게 된다. 그 성공을 위해 정수는 `양쪽 어깨가 짓물러진 자리에서 피와 고름이 함께 터지는 노동'을 하는데 이는 마치 정수가 성인이 되기 위해 겪어야 될 고통을 보여주는 듯 극적이다.

 

그렇게 고생 끝에 많은 돈을 벌게 된 정수는 사람들에게 떵떵거리며 250CC 오토바이를 사 몰거나 접대부가 나오는 술집을 들락거린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행동이 ‘어른 노릇’이 아니라 ‘어른 놀이'였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감에 빠져들게 된다. 준비되지 않은 채 너무 빨리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정수의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아주고, 학교를 그만두고 한 모든 일들이 정수가 진짜 어른이 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19세』는 유년의 추억들을 유쾌하게 담아내면서 한편으로는 쓸쓸할 만큼 아름다운 정경을 보여주며 10대 시절에 누구나 한 번쯤은 가져봤을 법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을 대면하며 치기 어린 시절의 상처를 보듬는 여정을 펼친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고 애쓰고, 이를 수 없는 곳에 이르기 위해 버둥거리는 것은 청소년기만의 특권이며 씁쓸한 실패를 맛보고도 그것을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시절 왜 그렇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했는지, 어른이 되기 위해 그토록 온갖 반항을 일삼으며 어른들의 속을 썩였는지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다면 『19세』를 읽고 함께 웃고 울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이순원 소개

 

상고를 1,2등으로 졸업하면 한국은행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1972년에 강릉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하지만 왼손잡이라 다른 아이들만큼 능숙하게 주판을 놓을 수가 없어서 이순원은 은행원이 되는 대신 고랭지 농사를 지어 돈을 벌기로 결심한다. 이후 학교를 그만두고 대관령으로 올라가 농군이 되지만 고된 농사일을 체력이 감당하지 못해 2년 뒤 학교로 돌아가야 했다. 그 시기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눈부셨던 시절로 남아 있다. 앞으로도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고 싶다고 한다.

 

1978년에 나온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까지도 소설에는 소설적인 문장이 따로 있는 줄로만 생각했던 그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통해 간명하고 정확한 단문이 얼마나 아름다운 소설 문장인가를 깨닫게 된다.

 

이순원은 1988년 「문학사상」에 「낮달」을 발표하며 데뷔 이후 왕성한 필력으로 문단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순원 문학은 작가가 비관주의자임을 명료하게 드러내는데 그것은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실현하는 것에 대한 비관이다. 이러한 비관주의는 부정적인 대상물을 찾아 극단적으로 부정적 요소를 과장하고 도드라지게 형상화하거나 역으로 작고 연약하고 위태로운 가치나 존재들에 대한 관심으로 형상화된다. 이순원의 작품세계는 「수색」연작들을 전후로 하여 성격을 달리하는데, 「압구정동」시리즈를 비롯한 「수색」연작 전의 작품들이 현실에 대한 발언의 수위가 높은 작품이고, 연작 이후의 작품들에선 구체적 삶의 체험과 내면세계가 밀도 높게 반영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순원의 후기 작품들이 작가의 사적 체험을 소재로 하면서도 개인적인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보편적 가치의 차원으로 확대시킨다는 것이다.

 

저자는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와 그 10년 후 속편 격인 『지금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를 통해서 일관되게 자본주의를 비판한다. 1편에서 자본주의의 타락한 욕망을 테러로 응징했던 저자는 속편을 낸 후 인터뷰에서 “나는 압구정동으로 상징되는 이 땅 천민자본 상류층의 끝간 데 모를 욕망과 타락을 연쇄살인의 형식을 통해 비판·경고했다.그러나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런 면에서 무엇 하나 달라진 것이 없다. 그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나는 여전히 혁명을 꿈꾸고 테러를 꿈꾼다.”라고 말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대 정동진에 가면」 등의 작품에서도 소외되고 연약한 존재에 대한 연민의 시선이 강하게 흐르며, 「순수」에서는 이같은 연민이 구체적인 사회적 발언을 입어 힘을 얻는다. 「순수」에서 40년전 잔칫날 동네 사내들이 혼사 주인공을 화제로 함부로 내뱉는 음담은 우리의 연약한 ‘누이들’에게 가해지는 아픔이 사회적 폭력의식의 깊은 뿌리를 갖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암시한다. 프랑스 로코코 시대의 음란상에 우리 사회를 빗대는 발언에서는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와 같은 맹렬한 목소리가 울려나온다.

 

그리고 가두어도 가두어도 비집고 나오고 또 갖고자 하면 저만치 달아나버리는 우리 내면의 욕망을 다룬 「수색」연작 이후로는, 우리 내면의 무늬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며, 구체적 삶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작이며, 작가가 6년만에 내놓은 창작집 『첫눈』 역시, 말의 아름다움이 흩뿌리는 잔잔한 서정 안에서 현실의 아픔과 사회적 비극을 밀도 있게 그려내며 깊은 내면세계와 조응한다. 개인의 상처와 사회의 굴곡을 구체적 삶의 형상화를 통해 상기시키고, 따스한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인의 아픔을 공유하고, 위로의 눈길을 건네고 있다.

 

창작집으로 『첫눈』, 『그 여름의 꽃게』, 『얼굴』, 『말을 찾아서』,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등이 있고, 장편소설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수색, 그 물빛 무늬』, 『아들과 함께 걷는 길』, 『순수』, 『첫사랑』, 『19세』, 『나무』, 『워낭』 등 여러작품이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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