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281)] 성석제의 이야기 박물지, 유쾌한 발견
성석제 저 | 하늘연못 | 406쪽 | 13,5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재기발랄한 문장과 풍요로운 입담, 경쾌하고 해학적인 위트를 자랑하는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성석제의 신작 산문집. 이번엔 글쓰기의 방식을 달리 풀어내 폭소와 기지가 담긴 '성석제표 이야기 박물지'를 독자에게 선보인다.
현재에서부터 과거에 이르기까지 동서양 고금을 넘나드는 역사적인 사건·사례에 관한 진기한 기록들과 알 듯 모를 듯한 다양한 이야기·지식·상식·과학·문화·예술의 세계를 유쾌한 입담을 곁들여 풀어낸다. 작가는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이들 이야기 속에 세상 이치와 진실, 삶의 모순과 오류, 나아가 자연과 문명과 인간과 인간다움에 관한 설득력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야기 박물지'라는 이 책의 부제가 암시하고 있듯 재미와 상식, 웃음과 통찰, 진지함과 흥미로움이 곁들여진 박물지, 앎을 좇는 숭모의 기록이자 다양한 지식과의 만남에 관한 유익하고 흥미로운 지식의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소설가는 소설을 씀으로써 독자에게 다가가고 대화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보석 같은 순간, 섬광처럼 터지는 웃음과 함께 알게 되는 일상의 비의를 소설에 다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아까운 이야기, 모두 다 알고 있지만 나만 몰랐던 어떤 것, 보고 들으면 유쾌하고 흥미로우며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지는 생각과 느낌을 담으려고 했다.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돈을 벌게 해주거나 출세를 하게 해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의 삶을 흥미롭게, 일상을 즐겁게 만들고 사람 사이의 관계를 윤택하게 해줄 것임을 확신한다.
책의 전체 꾸밈은 4부로 나뉜다. 첫째 단락은 우리 삶의 비밀과 그것에의 문학적인 성찰을 담은 염결성 짙은 이야기들의 장. 둘째 단락은 우리의 상식 체계와 그 오류들과 관련된 논리궁리의 장. 셋째 단락은 다양한 먹거리들을 되짚어 관찰한 맛과 음식의 장. 마지막 단락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거나 그릇되게 사용하고 있는 언어 체계와 문자들에 관한 성찰의 장이다.
작가는 이들 내용을 모두어 앎은 아름답다, 좀 알게 되었는가 싶으면 저만큼 달아나 애를 태우게 하는 앎의 신비한 매력은 미의 여신 비너스를 방불케 한다, 둔한 지력을 총동원하여 더딘 걸음으로 따라가며 나날이 새로 태어나는 앎을 바라보는 일은 고통스럽고도 행복하다고 밝힌다. 다종다양한 박물들에 관한 색다른 궁리와 접근의 산물이자 그것들과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밀접하게 연관된 우리 삶의 비의를 정연하게 밝혀놓은 문학적 기록. 매 단락마다 빛을 발하는 정연한 논리와 성찰, 궁리와 질문으로 가득한 사유의 세계가 사람과 세상과 삶을 향해 한층 가까이 다가서 있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 속에 돋보인다.
작가 성석제 소개
1960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으며,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6년에 <문학사상>에 시 '유리닦는 사람'을, 1995년 <문학동네> 여름호에 단편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소설가로서의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평론가 우찬제는 그를 거짓과 참, 상상과 실제, 농담과 진담, 과거와 현재 사이의 경계선을 미묘하게 넘나드는 개성적인 이야기꾼이며, 현실의 온갖 고통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올바로 성찰하면서도 그것을 웃으며 즐길 줄 아는 작가라 평했다. 또한 평론가 문혜원은 “성석제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농담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막힘없이 풀어놓으며 '마치 무협지의 고수들처럼'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입담을 펼친다”라고 전한다. 이런 평론가들의 말처럼 성석제는 미묘한 경계선을 거닐면서 재미난 입담으로 이야기를 펼치는 작가이다.
그의 대표작『소풍』은 흥겨운 입담과 날렵한 필치가 빛나는 산문집이다. 저자는 음식을 만들고 먹고 나누고 기억하는 행위가 곧 일상을 떠나 마음의 고삐를 풀어놓고 한가로운 순간을 음미하는 소풍과 같다고 말한다. 음식은 “추억의 예술이며 오감이 총동원되는 총체예술”이며, “필연코 한 개인의 본질적인 조건에까지 뿌리가 닿아 있다”는 지론은 곧 우리 세대가 잃어버린 사람살이의 다양한 세목을 되살려온 성석제 소설세계와 상통한다. 십수년간 각종 매체에 연재하며 갖가지 음식 속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낸 작업이 ‘음식의 맛, 사람의 맛, 세상의 맛’을 함께 음미하게 한다.
단편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모든 면에서 평균치에 못 미치는 농부 황만근의 일생을 묘비명의 형식을 삽입해 서술한 표제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포함하여, 한 친목계 모임에서 우연히 벌어진 조직폭력배들과의 한판 싸움을 그린 「쾌활냇가의 명랑한 곗날」, 돈많은 과부와 결혼해 잘살아보려던 한 입주과외 대학생이 차례로 유복한 집안의 여성들을 만나 겪는 일을 그린 「욕탕의 여인들」, 세상의 경계선상을 떠도는 괴이한 인물들의 모습을 담은 「책」, 「천애윤락」,「천하제일 남가이」등 2년여 동안 발표한 일곱 편의 중 · 단편을 한 권으로 엮었다. 이번 작품집도 예외없이 세상의 통념과 질서를 향해 작가 특유의 유쾌한 펀치를 날리는데, 비극과 희극, 해학과 풍자 사이를 종횡무진한다.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는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이후 성석제가 3년간 발표한 단편들을 모았다. 혼기에 이른 맏딸을 염려하는 어머니의 이야기와 딸이 어머니에게 읽어드리는 옛이야기를 교차 시키며 유려하게 텍스트를 직조해낸 표제작을 비롯, 제49회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내 고운 벗님' 등 총9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기성의 통념과 가치를 뒤집는 화려한 수사와 “웃음의 모든 차원을 자유자재로 열어놓는 말의 부림”으로 우리 주변에 있음직한 각양각색 인물들의 삶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표면에 드러나는 유쾌한 재미와 해학, 풍자 밑에는 세상을 보는 날카로운 통찰이 번뜩이기도 하고 그리움이나 인간을 향한 건강하고 따뜻한 시선이 은근히 깔려 있다.
이외의 소설집으로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새가 되었네』『재미나는 인생』『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호랑이를 봤다』『홀림』『지금 행복해』 등과 장편소설 『왕을 찾아서』『궁전의 새』『순정』 등이 있으며, 명문장들을 가려 뽑아 묶은 『성석제가 찾은 맛있는 문장들』이 있다.
1997년 단편 「유랑」으로 제30회 한국일보문학상을, 2000년 「홀림」으로 제13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했고, 2001년 단편「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로 제2회 이효석문학상, 같은 작품으로 2002년 제33회 동인문학상을 받았으며, 2004년 「내 고운 벗님」으로 제49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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