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283)] 잠자는 남자
조르주 페렉 저 | 조재룡 역 | 문학동네 | 164쪽 | 13,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조르주 페렉은 20세기 후반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온갖 문학적 실험에 몸을 던진 보기 드문 집념의 작가다. 45세 기관지암으로 죽기 전까지 작품 활동을 펼친 기간은 15년 남짓이다. 하지만 소설과 시, 희곡, 시나리오, 에세이, 미술평론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전방위적인 쓰기를 했다. 1965년 첫 소설 『사물들』로 르노도 상을, 1978년 『인생사용법』으로 메디치 상을 수상했다.
이번에 출간하는 페렉 선집 3권 『잠자는 남자』는 작가의 젊은 시절을 가늠하게 하는 사회학적 자전소설로, 이십대 중반 주인공 ‘너’의 파편화된 의식이 좇는 (반)의식 상태의 기행을 이인칭으로 풀어낸 독특한 소설이다. 1974년 베르나르 케이잔 감독과 공동 연출해 당해 최고의 신진 영화인에게 수여되는 장 비고 상을 수상했다. 페렉은 자신과 똑같이 오른쪽 윗입술에 흉터가 있는 남배우 자크 스피세를 주인공 ‘너’로 발탁했다. 또 내레이션은 뜻밖에도 여배우 루드밀라 미카엘에게 맡김으로써 이인칭 화법으로 쓰인 절대고독의 작품세계를 영화적으로 풀어내는 데도 성공했다.
“네가 눈을 감자마자 잠의 모험이 시작된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이다. 주인공 ‘너’는 스물다섯의 소르본 대학생이다. 파리의 한 후미진 칠층 고미다락에 사는 이 청년은 바로 저 문장에서부터 시작해 이 기이한 의식의 배회, 잠의 모험에 나선다. 그는 ‘일반사회학 고등교육 자격증’을 위한 일차 필기시험을 앞두고 있고, 관계를 확장하고 장래를 설계해야 할 나이에 있다. 그러나 주인공 ‘너’는 저 첫 문장에서 보다시피 어느 날, 여느 날과 다름없는 어느 날, 새벽의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 가물가물한 방을 훑어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눈의 초점만 맞추고 있다. 이제껏 세상은 이 젊은이에게 초점을 맞추기 위해 부단히 다가가고 애를 써야만 볼 수 있는 피사체였다. 오늘 이 젊은이는 무심하게 자신을 방기해버리기로 한다.
이 젊은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먹지도 않고, 꼼짝없이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다. 오직 쥐새끼처럼, 고양이나 유령처럼, 밤이 되어야 겨우 파리 시내를 나간다. 한번은 파리를 벗어나 시골의 부모님 집에도 다녀온다. 별다른 것도 없다. 친구들이 찾아와도 문을 열지 않는다. 하다못해 일층에 있는 우편물도 찾으러 내려가지 않는다. 거리의 누구와도 시선을 맞추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자신을 내버려둔다. 이런 절대고독의 무관심 속에서 잠든 너를 톡톡 두드려 깨울 때까지, 주인공 ‘너’의 무심한 배회는 정처 없다.
이 소설에는 페렉의 후기작에 나타나게 될 특징들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책이 출간된 1967년, 페렉은 울리포에 가입했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이후 울리포의 자장 아래 자신의 작품세계를 실험적으로 이끌어나갈 행보를 예감하게 하는 맹아가 깃들어 있다. 수없는 작가-작품의 패러디, 인용과 다시 쓰기 등 언어의 단순 조합을 통한 새로운 말의 창조 가능성을 일찌감치 페렉은 포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내적 고백을 특징으로 하는 주관성의 일인칭도, 관조를 통한 객관성을 담보하는 삼인칭도 아닌, 이 양자를 버무려 의식의 다양한 층위를 포착해낼 수 있는 이인칭 화법을 구사함으로써 주인공이 취한 세계관인 ‘무관심’을 하나의 사건처럼 다룬다.
또한 페렉에게 중요한 것은 ‘기억하기’이다. 그는 나치의 가스실에서 죽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평생 간직하고 살았다. 그는 한시도 이 사실을 잊지 않았으며, 하루하루 망각의 잠과 세월의 더께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나는 기억한다”를 자신의 글쓰기 형식으로 승화시킨 작가다. 즉 망각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기억하기, 차이를 겨냥한 수없는 작가들의 잊힌 문장들의 귀환이다.
주인공 ‘너’의 동공(눈알)과 방과 창의 세계는 이 흐릿한 세계의 외곽을 다지는 작가의 눈이다. 이 소설은 그 눈의 이야기다. 세계가 한 인간에게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지, 초점을 맞춰가는 이야기다. 페렉은 이 혼자 남은 단독자를, 그 젊은이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를 이야기한다.
작가 조르주 페렉 소개
작품마다 완벽히 새로운 형식의 시도를 감행해 자신만의 분명한 문학 세계를 구축한 조르주 페렉은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소설가로 평가되고 있다.
1936년 파리에서 태어나, 노동자 계급 거주지인 벨빌 구역의 빌랭 가에서 유년을 보냈다. 프랑스로 이주한 폴란드계 유대인이었던 부모님을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잃은 뒤 페렉은 고모에게 입양되었다. 1954년 소르본 대학에 입학하지만 학업을 중단하고 <누벨 르뷔 프랑세즈> <파르티장>등 여러 잡지에 기사와 문학 비평을 기고했다. 군 복무 뒤 파리로 돌아와 1962년부터 국립과학연구소의 신경 생리학 자료 정리가로 일하며 글쓰기를 병행했으며, 1965년 첫 소설 『사물들』로 르노도상을 탔다.
그 후 1960년대 전위 문학의 첨단에 섰던 실험 문학 그룹 울리포OuLiPo에 가입했다. 울리포의 실험 정신은 이후 페렉의 전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데, 그중에서도 알파벳 e를 빼고 쓴 소설 『실종』, 그 후로 3년 뒤에 모음 중 e만 써서 써낸 소설 『돌아오는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1978년 소설 『인생 사용법』으로 메디치상을 탄다. 1982년 45세에 폐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마당 구석의 어떤 크롬 도금 자전거를 말하는 거니?』 『공간의 종류』『W 혹은 유년기의 추억』『알파벳』 『나는 기억한다』 사후에 출간된 『어느 파리 지역의 완벽한 묘사 시도』 『생각하기/분류하기』 『53일』 등이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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