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288)]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
김진규 저 | 문학동네 | 248쪽 | 10,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달을 먹다』로 제13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작가 김진규의 장편소설.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은 조선 성종대의 한성부 명례방을 배경으로 개성 만점의 다양한 캐릭터들이 벌이는 여러 사건들을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문장으로 경쾌하게 풀어내면서 전작과는 또다른 매력을 한껏 발산하고 있는 작품이다. 조선시대의 사회상과 풍속에 대한 세밀하고도 촘촘한 묘사, 끝까지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하는 흡인력 있는 이야기와 더불어 결말에 이르러서는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경쾌한 반전 등 다양한 소설적 매력이 담뿍 묻어난다. 이미 전작 『달을 먹다』에서 여러 가문, 여러 세대에 걸쳐 얽히고설킨 이야기의 타래를 노련하게 풀어내는 필력을 보여주었던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더욱 풍성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로 독자들을 매혹시킨다.
자신보다 키가 한 뼘 정도 크고 몸무게도 너덧 근은 더 나가 보이는 마나님을 모시고 사는 생원 ‘공평’은 성격이 드센 마나님만 보면 깜짝깜짝 기가 죽는다. 그러면서도 나라님도 하는 ‘공처’를 자신이 하는 것은 ‘충(忠)’이라고 억지로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공생원은 마나님이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손자를 보고도 남을 마흔다섯 나이에 첫아이 임신 소식을 들었으니 마냥 즐거워해도 모자랄 판에 공생원은 근심걱정만 늘어간다.
혼인을 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아이가 들어서지 않아 천지사방 용하다는 의원과 무격을 죄다 찾아다녀봤지만 별 소용없었다. 또한 의원 서지남은 공생원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니 그만 포기하고 마나님한테나 잘하라고 면박을 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마나님이 임신을 했다니. 그렇다면 지금 마나님의 뱃속에 들어앉은 아이는 대체 누구의 자식이란 말인가.
서지남이 비록 지난 초봄에 의료사고를 내고 야반도주를 한 의원이긴 하나 공생원은 자신에게 이상이 있다는 그의 말을 돌팔이의 공갈쯤으로 무시하고 마음 편히 있을 수가 없다. 시름 끝에 결국 공생원은 마나님을 임신시켰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하나둘 꼽아본다. 의원 채만주, 참봉 박기곤, 두부장수 강자수, 노비 돈이, 알도 임술증, 저포전의 황용갑, 처팔촌 최명구, 악소배 백달치 등등 미심쩍은 자가 한두 명이 아니다. 과연 공생원은 진실을 밝혀내고 시름을 덜 수 있을까?
『달을 먹다』가 양반과 부유한 중인 계층의 이야기라면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은 서민들의 이야기다. 그만큼 작가의 손끝에서 풀려난 문장들은 보다 흥겹고 신이 난다. 등단 만 이 년, 그리고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두번째 작품, 아직 보여줄 것이 훨씬 더 많이 남은 이 작가의 소설세계가 과연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벌써 작가가 들려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작가 김진규 소개
『달을 먹다』로 일거에 인기 작가로 발돋음한 그녀는 한국의 문단을 짊어지고 갈 소설가이다. 1969년 겨울, 그저 그런 집에서 막둥이로 태어났다. 화성華城이 내려다보이는 여학교를 다니는 동안 역사에 마음을 주기 시작했고, 이란어과 과지 편집을 맡으면서 출판에도 관심을 갖게 됐으나 오래가진 못했다.
손에 읽을거리가 없으면 불안해지는 문자 중독 현상은 대입학력고사 이후로 심해졌다고 한다. 한국외대 이란어과 말년, 잠시 출판사 근처를 얼쩡대기도 해봤으나 결국 졸업하던 해 가을에 결혼, 지금은 딸아이와 공부하고 있다. 서른을 넘기던 해 우울증이 발병했다. 고생스러웠지만 여분의 인내심을 꽤 벌었다. 할 줄 아는 운동은 없어도 야구는 알아보며, 출 줄 아는 춤은 없어도 발레는 즐겨 본다.
허미혜 화백의 그림을 좋아한다. 음악 취향은 상당히 잡스럽고 변덕스러운 편이나 테너가수 마리오 델 모나코가 부른 아리아 「의상을 입어라」에 대해서만은 일관되게 충성한다. 늙어서 딸아이에게 좋은 친정이 되고 싶은 게 꿈이다. 2007년 『달을 먹다』로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으면서 소설가가 되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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