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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읍시다 (654)] 알바 패밀리
- 고은규 저 | 작가정신 | 232쪽 | 12,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대한민국의 시간제 근로자는 2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취업이 안 돼 수년 동안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갑작스런 은퇴와 취약한 복지로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드는 노인 인구수도 늘고 있다. 이렇듯 대부분의 가족 구성원이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삶이란 결코 과장이라 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혹독한 현실이다. 아르바이트는 더 이상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청춘들의 낭만 서린 경험이 아니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온 가족이 감내해야 하는 불안과 고통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다. “알바가 갑이다”라는 광고 카피에 반발하는 자영업자들이나, 최근 논란이 된 수많은 ‘갑질’에 분노하지만 정작 소비자의 지위를 가지게 되면 당당히 ‘갑질’을 저지르는 게 또한 우리의 모습이지 않은가. 상품과 서비스의 소비자가 되기 위해 인간성이 소비되어야만 하는 악순환, 갑에서 을로 을에서 갑으로 수시로 둔갑하며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비극은 우리가 일상에서 겪고 있는 문제들이다.
『알바 패밀리』는 이러한 소비자본주의 사회의 메마른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작은 개인들의 아픔을 게임하듯 발랄하고 경쾌한 언어로 풀어낸다. 시대의 비극과 그것을 견뎌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족애를 보여주며 서늘한 감동을 선사한다. 그저 따뜻한 저녁상과 관리비를 밀리지 않는 게 꿈인 한 가족의 왁자지껄한 알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매일 밤 집을 놔두고 트렁크에서 자는 ‘트렁커’들의 내밀한 상처를 따뜻한 시선과 재기발랄한 유머로 그려낸 첫 번째 장편소설 『트렁커』로 2010년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을 수상했고, 죽음을 관리해주는 회사인 ‘데스케어’를 배경으로 고독사와 죽음 후에 남겨지는 것들에 대하여 들추어낸 두 번째 장편소설 『데스케어 주식회사』로 문학계에 입지를 굳힌 막강한 이야기꾼 고은규 작가가 또다시 못 말리는 신작 장편소설을 들고 나타났다.
『알바 패밀리』는 인간이 상품처럼 소비되는 자본주의 시대에 몰락해가는 한 시간제 아르바이트 가족의 이야기로, 좀처럼 나아질 희망도 없는 삶을 보전하기 위해 온 가족이 시간제 일자리를 전전해야 하는 무참한 우리 시대의 초상을 고은규 특유의 통렬한 풍자로 그려냈다. 세상의 비극을 그려내는 고은규의 화법은 놀라울 정도로 웃기고 경쾌하다. 우리는 비판적 인식과 표현 사이의 아이러니 속에서 개인의 상처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고, 사소한 유머가 무게감 있는 조롱으로 승화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바퀴벌레야, 내 인생은 왜 이런 거니?”
집에 돌아오면 바퀴벌레한테까지 신세한탄하기에 여념이 없는 엄마, 명품 가방을 보면 그 아우라에 몸서리를 치는 로라, 9,820원이 전 재산이라는 스물세 살의 로민, 거대 자본이 영세 상인들의 밥줄을 앗아가는 상황에서 순진무구한 경영 철학이나 늘어놓는 아버지, 지지리 궁상맞고 적당히 속물적인 비정규직 가족의 애면글면한 시간제 인생사가 펼쳐진다.
「반품왕」 로라는 패션 리뷰 사이트 ‘세일즈 프로모션’의 리뷰왕으로 리뷰만 쓰고 상품은 도로 돌려보내는 상습 반품자다. 당당하게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소비자보호법을 사랑하던 로라는 어느 날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던 소비자보호법의 역습을 당하고 마는데……. 한편 가구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는 물밀듯이 반품돼 들어오는 물건들을 처리하지 못해 쩔쩔맨다.
「보라보라 스포츠센터」 로라는 보라보라 스포츠센터의 수영장에서 수질 관리 요원으로 일하며 사장과 고객들의 서비스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수질 관리 요원이란 스포츠센터의 회원을 끌어들이기 위해 수영하는 척하면서 소위 ‘물’을 관리하는 젊은 남녀 아르바이트생들을 말한다. 사이즈가 맞지 않는 브래지어를 교환하러 대형 마트에 간 로라는 그곳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는 엄마가 난처한 상황에 휘말린 모습을 발견하는데…….
「버몬트 씨 옷 벗기기」 R 컬렉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로민은 소각시키려고 했던 외투를 추위에 떨던 노숙자 버몬트 씨에게 건네준다. R 컬렉션은 브랜드 이미지를 훼손시킨다는 이유로 버몬트 씨의 외투를 다시 벗겨 오라고 한다. 그러나 버몬트 씨는 외투를 순순히 내놓지 않고 로민은 R 컬렉션에 손해배상을 해야 할 위기에 처한다.
「애드밸리」 신도시의 중심 상가 애드밸리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로라는 무섭게 밀려드는 광고 전단지들을 치우느라 애를 먹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지긋지긋한 전단지를 뿌리는 아르바이트들 중엔 엄마와 오빠 로민이 끼어 있다. 황당해하는 로라.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로라는 또 한 번 마주하고 싶지 않은 비밀을 알게 되는데…….
「빵을 던져라」 가구공장이 망해 한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던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밤마다 수상한 외출을 한다. 엄마와 로민, 로라는 아파트 관리비를 내기 위해 시청에서 주관하는 지역 상인들과의 만남에 진행 보조 요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다. 그런데 그곳에 홀연히 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아버지 같은 영세한 ‘생산자’와 로라 같은 영악한 ‘소비자’가 파국에 이르는 동안, 그사이에 사악한 대형 ‘유통업체들’은 탐욕스레 이익을 챙긴다. 가구공장이 문을 닫고 한동안 긴 침체에 빠져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던 아버지는 이제 좀 정신을 차리는가 싶더니 빵집 사장들 틈에 끼어 작은 반란을 준비한다. 거대한 트레드밀 위 나약하기만 한 개인들이 허겁지겁 달리는 사이 아버지는 잠시 작은 저항을 꿈꾼다.
타인의 욕망을 내면화하고 신경증적인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로라, 억척스럽게 가족을 이끌어가는 엄마, 노숙자에게 그레이스의 고급 외투를 건네주는 로민,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걸 보여주는 아버지. 모두 각박한 세상을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우리들 누군가의 모습과 닮아 있다. 그들이 척박한 삶을 견뎌나갈 수 있다면 그건 가족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천신만고 끝에 똘똘 뭉친 이 가족에게 과연 밝은 미래는 올 것인가?
작가 고은규 소개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 그 일대에서 성장하였다. 단국대학교 예술학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후 동대학원에서 수학 중이며 홍보실 사보 담당 기자, 홍보대행사 언론 PR 담당자로 근무하였다. 2005년 사직서 제출 후 학교로 도주, 소설과 다시 만나 2007년 ‘문학수첩’에 단편소설 「급류 타기」로 등단하였다. 현재는 오후에는 가르치는 일을 생업으로 하며, 새벽에는 소설 속 캐릭터들과 씨름하고 있다. 2010년 첫 장편소설 『트렁커』로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을 수상했다.
첫 장편소설 『트렁커』에서는 “좀처럼 공감하기 힘든 상처와 아픔을 게임하듯 발랄하게 고백”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삶의 아픈 부분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시선을 떼지 않는다. 생의 아픈 순간마저도 게임을 통해 하나씩 치유해 가는 과정은, 모든 삶이 아프고 절망적이지 않다는 희망적 암시인 동시에, 고은규의 소설이 우리 사회 곳곳의 아픈 이야기를 따뜻이 아물도록 하는 장(場)이 되리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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