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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청소년 테마 소설『존재의 아우성』. 청소년들의 불안과 고민을 구성하는 주요 화두를 중심으로 소설을 엮었다. 이번에 새롭게 주목한 주제는 ‘정체성’과 ‘중독’이다. 다양한 색채의 단편들은 예민한 감각으로 독자들과 교감하며 우리 청소년문학의 스펙트럼을 한결 풍성하게 할 것이다.
일곱 명의 작가들은 정체성이라는 공통테마에 머리를 맞대되, 깊은 주제의식을 가지고 다양한 군상을 제시함으로써 청소년 독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저마다의 돌파구를 냈다. 이들이 마련한 일곱 색채의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우리 청소년들이 소외된 존재, 기계화된 존재가 아니라 진정한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가.”
문학동네는 청소년들의 불안과 고민을 구성하는 주요 화두를 중심으로 ‘청소년 테마 소설’ 세 권을 엮어 지난해 출간한 바 있다. ‘청소년 테마 소설’은 청소년문학의 비약적인 성장을 이끌어온 대표 작가들, 신선한 발상과 진솔한 화법으로 청소년문학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신예 작가들, 그리고 청소년문학을 향한 무한한 애정을 양분삼아 10년간 활발히 현장비평을 해온 비평가 유영진이 자기 삶의 주체로서의 청소년에 대해 함께 고민한 결과물이다.
정체성이라는 말은 청소년과 가까워 보인다. 청소년은 아이도 어른도 아닌 중간자로서 질풍노도의 시기라 일컫는 사춘기를 겪으며 자아와 세계에 대한 고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청소년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정체성이라는 삶의 주요한 개념과 가치에 대해 탐구할 시간이 허락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과도한 학업 경쟁의 굴레에 갇힌 우리 청소년들은 스스로를 탐색하고 자기 뿌리를 굳건히 할 기회와 여유를 빼앗기고 만 것이다.
『존재의 아우성』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 즉 기성세대의 무분별한 욕망에 의해 자기 자신은 물론 타인과 세상을 향한 감수성을 잃어가는 존재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삶을 살아가는 데 정답이 있다고 아는 척하며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제대로 마주하고 세계와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는 매개자가 돼줄 것이다. 오롯이 빛나는 별처럼 청소년들이 진짜 모습을 찾을 때까지, 우주의 주인이 되기까지.
수록 작품 소개
「미스터 보틀」 최영희
영어 난독증에 시달리는 권지. 영어를 못하면 대학도 취직도 애초에 물 건너간 거라는 선생님의 말은 권지를 짓누른다. 영어 수업 10분 전, 권지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친구들 앞에서 ‘영어 병신’임을 인증할 것인가, 아니면 공원에서 우연히 주운 보온병이 떠들어대는 말을 믿고 학교를 나갈 것인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흔치 않은 ‘영어 포기자’가 된 권지는 과연 어떤 꿈을 꿀 수 있을까. 웃음을 자아내는 한바탕 소동을 통해 기성의 ‘성공 신화’에 기죽지 않고 자신을 지켜내는 우리 아이들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실족」 이금이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는 한결. 계속되는 공부와 과외, 그리고 엄마의 잔소리는 태평양을 건너 한결을 옭아매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라고는 홈스테이 주인이 기르는 잡종 개뿐이다. 끝 간 데 없는 허기를 느끼는 한결의 발길은 우연히 ‘뉴잉글랜드’호에 닿는다. 낮에는 배 모양의 박물관에 불과하던 그 배는 밤이 오자 17세기부터 18세기까지 대서양을 운항하던 당대 모습 그대로 한결 앞에 나타난다. 흑인 노예와 이주 노동자들의 떠들썩한 함성과 흥겨운 노랫소리는 한결의 가슴도 두드리는데. 부모가 만들어준 자신과 진짜 자기 모습 사이에서 휘청거리는 한 아이의 아우성이 정교한 구성과 작품 전반에 흐르는 서스펜스를 타고 읽는 이의 마음을 죄여온다.
「뷰 박스」 김민령
허리 통증을 빌미로 체육 수업을 빼 먹고 혼자 교실에 남은 정운. 알 만한 애들은 다 알 정도로 티내며 사귀던 여자친구 혜리에게 차인 후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하다. 쉴 새 없이 흘러가는 시간에서 내려선 것 같은 기분도 잠시, 같은 반 이진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언제나 주목받는 아이였던 정운은 2학기 절반이 넘도록 체육 수업을 빼 먹어도 알아차린 사람이 없을 만큼 존재감 없는 이진의 이야기에 처음으로 귀 기울이고 뜻밖의 풍경을 마주한다. 스스로가 희미하게 존재하는 먼지같이 느껴질 때, 나의 중심을 세우는 척추가 기울어지고 있다고 느껴질 때 정운과 이진의 이야기는 쉼표가 되어준다.
「호주 갈 사람?」 진형민
빙그레 편의점에서 일을 하는 용재와 하루가 멀다고 찾아와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을 나눠 먹는 장호. 어느 날 장호는 무료로 어학연수 갈 장학생을 뽑는다는 모 어학원의 광고지를 보고 용재를 부추기고, 결국 둘은 호주에 갈 꿈에 부풀어 어학원에 제출할 자기소개서에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을 지어 적기도 한다. 면접관 앞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불우한 사정’을 털어놓는 다른 아이들 틈에서 용재는 문득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살아온 실제의 나와 남들이 바라보는 내 모습 사이의 거리를 실감한다. 작품에는 특별하고 특출 난 존재만이 부각되고 살아남는 이 시대 청소년들의 고민이 진솔하게 녹아 있다.
「같은 사람」 최서경
심한 따돌림을 당하는 가람은 아이들의 해코지를 피해 소각장에 숨지만 들킬 위기에 처한다. 그때 홀연히 나타난 주원이 가람을 위기의 순간에서 구해주고 둘은 종종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가람과 주원은 남들과는 다른 아주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 눈을 보면 상대의 속마음을 모두 읽을 수 있는 가람과, 마음먹으면 현실에서 벗어나 순식간에 바다 위 작은 배로 몸을 옮길 수 있는 주원. 둘의 비밀스런 동행과 갈등을 좇다보면, 자기 존재를 인정하고 구하는 방식, 타인과 삶 속에 껴들기 위한 노력과 변화에 골몰하게 된다.
「유나의 유나」 최상희
주인공 ‘나’와 둘도 없는 단짝 유나. 어느 날 갑자기 유나에게서 또 하나의 유나가 분리되어 나온다. 유나 투, 유나 스리, 유나 포…유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새로운 유나의 분리는 계속되고, 그 분리된 유나들은 유나 대신 학원에 가고 바이올린을 켜고 혼자 영화를 보러 가더니, 급기야는 학교 최고 얼짱인 지운에게 고백을 하기에 이른다. 나는 내가 모르는 단짝 유나의 모습에 뒤죽박죽인 심정. 확산과 수렴을 반복하면서 계속해서 변주되는 자아의 특질을 꼬집는다.
「세컨드 칠드런」 전삼혜
지현과 일란성 쌍둥이인 언니 지민은 수학여행을 갔다가 선박 침몰 사고를 당했다. 사고로 죽은 것은 언니지만, 그날 이후 지민은 ‘나’일 수가 없다. 친척들은 장례식장에서나 갑자기 집에 들이닥쳐서는 지현에게 언니가 꿈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너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언니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하기 일쑤다. 같은 사고로 형을 잃은 환일을 따라 ‘유가족 심리치유센터’에 간 지현은 어디에서도 말할 수 없었던 속내와 기억을 환일에게 꺼내놓는다. 내가 나이기 힘들 만큼 감당하기 힘든 상실감과 고통이 올지라도 흔들리는 자기 삶을 곧추세우고 자기 빛깔을 잃지 않기를, 작가는 진정어린 위로와 응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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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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