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스 캐롤 오츠 저 | 김승욱 역 | 은행나무 | 720쪽 | 18,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1970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그들』은 미국의 다양한 사회경제 집단을 다룬 연작 ‘원더랜드 4부작’에 속한다. 책은 1937년 여름부터 1967년 디트로이트 흑인 폭동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디트로이트 빈민가에서 격동의 삶을 살아낸 한 가족의 연대기를 서술한다. 지리멸렬한 삶의 한가운데 던져진 젊은 엄마 로레타 웬들, 폭력으로 얼룩진 세계에서 살아남고자 발버둥 치는 그녀의 아이들 모린과 줄스의 삶에 대한 열망과 분투를 생생히 그려낸다. 사랑, 계급, 인종, 도시 문제 등을 탁월하게 형상화함으로써 현대 영미소설 가운데 최고의 성취를 이뤄냈다.
토요일 밤, 한 주의 고된 일상을 위로해줄 사랑의 열기로 들떠 있던 16세 소녀 로레타는 남자 친구 버니 멀린과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다음 날 새벽 오빠 브룩에게 총을 맞은 버니의 시체를 곁에서 발견한다. 황망한 가운데 도움을 청한 경찰 하워드 웬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임신한 로레타는 당연한 수순인 듯 하워드와 결혼하여 웬들 일가가 된다. 믿어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새롭고 안정적이지만 여전히 불행한 삶으로 발을 디딘 로레타에 뒤이어 줄스와 모린이 등장한다.
로레타의 아들 줄스는 진작부터 집에서 뛰쳐나가 디트로이트 변두리를 떠돌아다닌다. 줄스는 단란하고 유복한 집안, 올바른 교육 환경, 따스한 애정을 나눌 연인 등 모든 긍정적인 기회와 가치가 박탈당한 채 지속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 자동차와 돈, 도박, 희망 없는 사랑, “타오르는 불”로 상징되는 무의미한 폭력에 경도된다. 한때나마 성실한 삶을 살아가려던 줄스를 다시 원래 자리로 되돌리는 것은 사랑의 욕망이다. 새로운 삶으로의 이행을 꿈꾸는 줄스에게 사랑이란 어쩌면 사회의 안전장치가 제거된 밑바닥의 사람들이 기대게 마련인 마지막 환상일 것이다. 그러나 줄스에게 총을 쏜 연인 네이딘이나 줄스 자신에게 사랑은 모든 생의 가치를 무화하는 것이었다. 줄스는 결국 마약을 하고 애인에게 성매매를 시키는 등 타락을 하고 디트로이트 흑인 폭동기에 이르러서는 살인을 저지른다.
로레타와 마찬가지로 모린 또한 가정을 꾸림으로써 안정되기를 갈구한다. 모린은 집을 뛰쳐나간 줄스와 달리 가사 노동과 가정 폭력의 희생양이 된다. 그런 모린에게 잠시나마 위안이 되는 공간은 도서관이었다. 소설 속 이야기들은 끔찍한 현실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상상의 도피처다. 그러나 고통에 찬 현실에서 벗어나는 길은 돈을 버는 일뿐이었고 그녀가 택할 수 있는 수단은 매춘이었다. 이 때문에 가해진 무자비한 폭력에 모린은 거의 2년간 혼수상태에 빠져든다. 간신히 회복되어 현실로 돌아왔을 때 대학 수업을 듣고 난 그녀는 ‘현실’을 알지 못하는 문학 교수 ‘오츠 선생님’에게 항변하면서도 그가 누리는 중산층의 안정된 삶을 갈망한다.
소설 끝부분에서 모린은 대학 강사 랜돌프와 결혼해서 디트로이트 교외의 안전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그토록 갈망해오던 안정된 가정을 꾸린 상태다. 하지만 줄스는 새로운 꿈을 좇아 서부로 떠나기로 하고 모린 앞에 나타난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으니 가족과 단호히 결별하겠다는 모린에게 줄스는 “하지만 모린, 너도 ‘그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니야?”라고 되묻는다.
작가가 여기에서 상기시키는 것은 이 소설을 읽는 우리 또한 ‘그들 중의 하나’라는 사실이다. 알 수 없는 삶의 비릿한 이면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섬세한 시선으로 결코 떨쳐버릴 수 없는 관계망 속에 위치한 독자를 호출한다.
『그들』이 쉽게 읽히는 대중 소설의 범주에서 벗어나 현대 영미문학사상 최고의 성취로 인정받는 이유는 역사의 수면에 떠오르지 않고 가라앉아 사라져간 일상의 작은 군상을 관찰하고 세밀히 기록하고 있다. 이로써 사적이고 내밀한 개인적 경험으로부터 공적인 역사의 한 장을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작가 조이스 캐롤 오츠 소개
1938년 뉴욕 주 록포트에서 공구 제작자 아버지와 가정주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조이스 캐럴 오츠는 여덟 살 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처음 문학을 접하고 열네 살 때 할머니에게서 타자기를 선물받아 작가의 첫걸음을 시작한다. 가족 중 유일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시러큐스 대학에 장학생으로 진학해 열아홉 살에 「구세계에서」로 대학 단편소설 공모에 당선됐다. 그리고 1964년 스물여섯 살 때 『아찔한 추락과 함께』를 발표한 이후로 50편이 넘는 장편과 1000편이 넘는 단편을 비롯해 시, 산문, 비평, 희곡 등 거의 모든 문학 분야에서 쉼 없이 왕성하게 활동해 왔다.
1967년 「얼음의 나라에서」, 1973년 「사자」로 단편소설만을 위한 최고의 문학상인 ‘오 헨리 문학상’을 두 차례 받았다. 1969년 『그들』로 미국 출판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인 ‘내셔널 북 어워드’를, 1996년 『좀비』로 브램 스토커 상을, 2005년 『폭포』로 페미나 외국문학상을 받았다. 이외에도 그녀가 발표하는 작품들은 매번 퓰리처상, 브램 스토커상, 펜/포크너 문학상, 오 헨리 문학상, 미국비평가협회상의 후보작으로 거론되곤 하며, 2004년부터 영미권의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위스콘신 대학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받고 1962년부터 디트로이트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쳤으며 현재 프린스턴 대학 인문학부의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그녀는 현대 미국 문학을 이끄는 최고의 여성 작가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춰 평단과 독자 모두의 찬사를 받는다.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는 『여자라는 종족』 외에 『사토장이의 딸』,『소녀 수집하는 노인』 『멀베이니 가족』 『빅마우스 앤드 어글리걸』『블론드』『블랙워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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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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