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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타임즈 칼럼 = 안병일 한국스카우트 서울남부연맹 사무처장] 작금에 들어 공무원시험에 응시하는 청년들이 운무를 연상하듯 하늘을 찌를 듯하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연말 9급 공무원 추가채용 경쟁률이 302대 1로 429명 뽑는데 9만 5천여명이 몰렸다는 언론보도를 접하면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참으로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공무원의 유형은 국가의 상황과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되고 있다. 정부의 규모가 작고 행정기능이 양과 질적으로 심화되지 않았던 예전에는 공무원수도 적었으나 정부의 규모가 거대해지면서 공무원수가 많아지고 행정기능의 다양화에 따라 공무원의 종류도 다양하게 확대 됐다.
우리나라의 공무원은 임용주체에 따라 국가공무원과 지방공무원으로 분류하고 다시 실적주의의 적용과 신분보장의 여부에 따라 경력직 공무원과 특수경력직 공무원으로 분류하고 있다. 아울러 국가공무원과 지방공무원의 구분 기준은 임용주체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따라 분류된다.
우리나라의 국가공무원법은 1949년 제정된 후 57년이 지난 후 지속돼온 계급제의 틀과 연공서열의 오래된 인사 관행의 틀에서 벗어나 범정부적으로 개방과 경쟁을 통해 성과와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해 2006년 7월 고위공무원단제도를 도입했다.
우리나라의 공무원 수는 2016년 9월 기준 1,026,841명으로 국가공무원 654,053명(63.7%), 지방공무원 372,788(36.3)으로 구성돼 있으며 일반직 공무원은 1급부터 9급까지로 계급을 구분하여 1급 관리관, 2급 이사관, 3급 부이사관, 4급 서기관, 5급 사무관, 6급 주사, 7급 주사보, 8급 서기, 9급 서기보로 계급과 직급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의 관료계급은 어떠했을까? 조선시대의 정치제도는 경국대전으로 법제화됨에 따라 관리는 문반과 무반으로 분류하고 관직은 중앙관직인 경관직과 지방관직인 외관직으로 구분하였다.
경관직은 국정을 총괄하는 의정부와 국왕의 명령을 집행하는 6조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6조 예하에는 여러 관청이 소속되어 행정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였고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그 아래 고을의 크고 작음에 따라 부, 목, 군, 현을 설치하여 관장했다.
조선시대에도 현대의 공무원 계급처럼 1품부터 9품까지로 계급을 분류하였으나 다른 점은 품계마다 정(正)과 종(從)으로 구분하여 18품계를 두었다. 정1품 대광보국숭록재부, 정2품 정헌대부, 정3품 통정대부, 정4품 봉정대부, 정5품 통덕랑, 정6품 승의랑, 정7품 무공랑, 정8품 통사랑, 정9품 종사랑으로 계급과 직급을 구분했다.(종1품부터 종9품까지의 계급과 직급은 생략)
조선시대의 관직에 특이한 것은 좌, 우를 관직명 앞에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좌의정, 우의정, 좌승지, 우승지 등의 관직에서 좌우를 사용하였는데 좌를 우보다 우선시하였다. 운회(韻會)에는 좌(左)와 좌(佐)는 동일하니 왼손은 오른손을 돕는 것으로 인간의 도는 오른쪽을 높게 여긴다 했다.
그러한 연유로 대체로 한(漢)나라 이전에는 오른쪽을 높은 것으로 여겨 벼슬의 품계가 강등하는 것을 좌천(左遷)이라 하고 높은 관직의 지위를 우직(右職)이라 했다. 그러나 지봉 이수광 선생은 후세에 관제에 좌를 먼저하고 우를 뒤로 하게 된 연유를 알 수 없다 하고 있다.
아울러 조선시대에는 관직의 수가 매우 적어 행수법을 많이 적용하였다. 새로 보임된 관직이 품계보다 낮은 경우에는 “행(行)”이라고 하고. 이와 반대로 보임된 관직이 품계보다 높은 경우에는 “수(守)” 라 하여 품계와 관직명 사이에 행과 수를 넣어 사용했다.
예를 들어 보면, 파주 자운서원에는 율곡 이이선생의 가족묘가 있다. 율곡선생의 맏아들의 묘비를 보면 “통정대부평창군수덕수이공휘경임묘”가 있다. 통정대부는 정3품 당상관 품계고 평창군수는 종4품 관직명이다.
여기서 이경임은 정3품 품계로 종4품 관직인 평창군수를 지냈는데 관직보다 품계가 높다. 이경임이 국왕으로부터 받은 교지에는 통정대부행평창군수로 되어 있었을 것인데 비석에는 행수법이 적용되어 있지 않다. 이경임의 묘비는 통정대부행평창군수덕수이공휘경임묘로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우리들이 조상들의 역사를 이해하려는 것은 현대행정의 연원을 찾아내고 여러 정책들의 원인요소를 밝히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시도되고 있다. 앞으로 전개될 미래의 행정모습을 알기 위하여 오랜 과거로부터 진행되어 온 행정의 법칙성, 예외성을 찾으려는 것이다.
어느 시대이거나 문화는 사상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사상은 곧 이념화되어 민족의 정체성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일반적으로 사회구성원 전체의 사상이나 이념도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지도자와 지도자 집단이 갖는 사상과 이념은 사회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막중하기에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글 : 안병일 한국스카우트 서울남부연맹 사무처장 / 글로벌사이버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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