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읍시다 (1286)] 교양과 광기의 일기
- 백민석 저 | 한겨레출판 | 228쪽 |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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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작가들의 작가’, ‘우리 시대 압도적 하드코어’ 소설가 백민석의 신작 장편 『교양과 광기의 일기』. 제목부터 독특한 이 소설은 40대 소설가인 ‘나’가 쓰는 ‘교양’의 일기와 광기 어린 한 10대 소년이 쓰는 ‘광기’의 일기가 일기장 앞뒷면에 번갈아 쓰인다는 구성의 환상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소설이다. 소설은 87일간의, 180개의 일기로 되어 있다.
『교양과 광기의 일기』는 얼핏 보면 난해하고 실험적인 작품으로 보인다. 번갈아 쓰이는 일기라는 형식은 이 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부터 난감하게 만든다. 하지만 소설은 작가가 직접 체험한 쿠바 여행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작가를 연상시키는 40대 남자 소설가인 ‘나’는 일본을 거쳐 쿠바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순조로워 보인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첫날, ‘나’의 안에서 한 ‘소년’이 깨어난다. 전쟁놀이와 광란의 섹스를 좋아하는 10대 ‘소년’은 아무도 모르게 ‘나’의 일기장 뒷면에 또 하나의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남자의 일기가 ‘교양’의 일기라면 소년의 일기는 ‘광기’의 일기다.
그날부터 둘은 같은 여행을 하며 각기 다른 것들을 보고 상반된 두 개의 일기를 써나간다. 도쿄에서 ‘나’가 도쿄의 지하철에 몰두할 때, ‘소년’은 일본의 사무라이와 칼에 심취한다.
쿠바에서도 마찬가지다. 쿠바 아바나에 도착한 ‘나’가 숙소를 중심으로 원형을 그리며 산책을 하면서 쿠반 샌드위치를 사 먹고, 돈을 환전하고, 쿠바 일정을 도와줄 코디네이터 리자를 만나는 동안, ‘소년’의 세계에선 ‘햄’과 ‘게바라’와 ‘루벤’이 도미노 게임을 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쿠바에서의 ‘나’의 일상은 한국에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계속 글을 쓸 수 있게 한국에서와 똑같은 환경으로 작은 방의 책상을 꾸미는 게 고작이다. 제일 골칫거리라고 하면 인터넷 정도일까. 그동안 ‘소년’은 숙소 맞은편 레스토랑에서 재즈 뮤지션들의 노래를 듣는다.
‘나’가 점점 더 큰 원을 그리며 아바나를 산책하고 미국 대사관과 여러 사상가가 말한 중심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소년’은 말레콘의 보이지 않는 낚시꾼들의 세계와 조우한다. ‘나’가 아바나 관광 지도를 보며 카피톨리오를 가운데 놓고 산책하고, 아바나 비에하의 ‘카사’라는 주택 형태를 보고 감탄하는 동안, ‘소년’은 허벅다리 안쪽에 ‘명산(名山)’이란 문신을 한 물라토 여자 ‘다나이스’를 만난다. 그리고 이 ‘다나이스’와 몸을 파는 ‘룰리의 숙녀들’의 세계로 들어간다.
한편 ‘나’의 일기장에선 단 한 번도 ‘다나이스’가 등장하지 않는다. ‘교양’의 일기에선 말레콘의 보이지 않는 낚시꾼은 등장할 수 없다. ‘나’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큰일이라는 건 인터넷을 하기 위해 나우타 카드를 구매해 와이파이존에 가거나, 비에 젖은 카메라를 앞에 두고 절망에 빠지거나, 새 카메라를 사기 위해 아바나를 정처 없이 헤매거나, 호세 마르티 문화원 측으로부터 강연 원고를 퇴짜 맞는 것 정도다. 반면, ‘소년’의 세계는 다르다. ‘소년’은 ‘룰리의 숙녀들’의 백인 마스터를 폭행하고, ‘다나이스’의 아버지를 찾기 위해 애쓰며, ‘나’와 같이 아바나를 떠나지 않으려고, ‘나’의 몸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든 저항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두 세계는 점점 좁혀지고, 겹쳐지고, 충돌한다. ‘소년’이 폭행했던 ‘룰리의 숙녀들’의 백인 마스터는 결국 “지난 10월부터 나타났고, 물 빠진 카고 반바지에 얼굴이 시커멓게 탄” 치노인 ‘나’를 알아본다. 호텔 내셔널의 연말 갈라쇼를 보던 ‘나’의 눈에도 ‘다나이스’가 보인다.
‘어느 날, 나의 일기 뒷면에서 아무도 모르게 광기에 찬 한 소년의 일기가 시작된다’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내면의 이중성을 파고든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교양성’과 무법적이고 비현실적이고 충동적인 ‘이중성’ 중 늘 어느 한쪽만을 중심에 놓고 세상을 보려는 사람들에게 비록 중심에선 밀려났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걸 소설로서 증명하려 한다. 작가가 직접 찍은 소설 안의 쿠바 사진과 중심에 대한 여러 사상가의 말은 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작가 백민석 소개
'엽기'라는 우리 시대 문화 코드의 한 대표적 사례로 여겨졌고, 충격적인 언어와 기괴한 상상력으로 일찌감치 문단과 독자들에게 충격을 준 작가이다.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5년 『문학과사회』 여름호에 「내가 사랑한 캔디」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르도 스타일도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매번 바꾸어 가면서 쓸”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피비린내 나는 살인과 유혈 낭자한 이미지로 상징되었던 ‘엽기’라는 문화적 코드도 작가에게는 하나의 경향이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장편소설 『헤이, 우리 소풍 간다』, 『내가 사랑한 캔디』, 『불쌍한 꼬마 한스』, 『목화밭 엽기전』, 소설집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러셔』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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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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